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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Story/모델링 이론

판다곰과 원숭이 그리고 바나나

판다곰과 원숭이와 바나나가 있습니다. 이중 두 가지를 묶는다면 어떤 것을 묶으시겠습니까?”

책을 읽다보면 모델링과 연관해서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생각이 흐르니까 좋지 않은 병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설명한 책을 읽었는데1), 한 부분을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서양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잘 파악한다고 합니다. 성격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죠. 데이터 본질이 생각나더라고요.

반면, 공자로 대표되는 동양 사람에게는 사물의 본질과 함께 관계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관시(관계)’라는 중국어를 강조하던 선배가 생각났고요. 모델링 관계가 생각났습니다.

서양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자신 외의 외부에 대해서는 별 상관하지 않습니다.

동양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죠. 어릴 때는 이 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젠 어느정도 인정합니다. 나는 내 본질 이외의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요.

주제가 벗어났는데... 오늘은 범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서양 사람이 범주라는 단어를 잘 이해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2)을 쓴 이유이기도 하죠. 한번 읽어보세요. 모델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면 장자는 범주론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도덕경에 나온다는 아래 글이 마음에 듭니다.

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뛰어 넘는 경지인 것 같습니다. 범주화를 경계했다는 것은 이미 범주화를 했다는 것이니까요. 옆길로 또 샜는데요.

첫 줄의 질문은 동양과 서양 대학생들에게 한 설문 조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묶으셨나요? 저는 주저 없이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었습니다. 주변에도 물었는데 그렇게 묶었고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실험 결과도 대다수의 동양 학생은 그렇게 묶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서양 학생은 판다곰과 원숭이를 묶었습니다. 판다곰과 원숭이는 동물이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고 보고 묶은 것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동양 학생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관계에 근거해서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었습니다.

이 질문에 판다곰과 원숭이를 묶으셨다면(아마 거의 없을 듯) 서양인의 피가 흐르거나 특이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살기 힘든

만약 설문이 두 가지를 그냥 묶어라가 아니라(무의식을 살피기 위한), 범주화하라고 했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모델링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세 사물의 특성을 보면 당연히 판다곰과 원숭이가 유사합니다. 속성이 유사하죠. 이는 데이터 통합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엔터티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엔터티의 속성(특성)을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외부 관계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다른 엔터티와의 관계나 프로세스, 화면, 조직(데이터 오너십) 등과 무관해야 합니다. 본질을 제외한 외부 환경의 작용은 없어야 합니다.

범주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관계(행위) 엔터티를 실체 엔터티에 통합하는 예도 있습니다. 데이터 통합은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통합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있는 엔터티끼리 통합하는 것이 아니고요.

모델링 측면에서는 판다곰과 원숭이를 묶는 것이 답입니다.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었다면 시스템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이 사물 자체의 본질을 범주화의 기준으로 삼았듯이 엔터티를 통합할 때도 엔터티 자체의 본질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범주화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기법입니다. 모델러에게 큰 도움이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1) 생각의 지도/리처드 니스벳/최인철/김영사/2004
2)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아리스토텔레스/김진성/이제이북스/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