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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이창호의 자서전이다. 이창호란 개인의 궁금함을 떠나 조훈현과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에서 읽게 된 책이다. 물론 이창호가 왜 돌부처가 됐는지도 궁금했다.

 

이창호의 부득탐승/이창호/라이프맵/2011

 


 

이창호를 잘 안다고 생각한 나의 기대와 달리 프롤로그를 읽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어눌한 글이어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어눌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에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여러가지 면에서 나와 닮았다. 과묵, 조심, 책임감, 신중, 어눌, 무심, 단순, 두통 등등 유사한 류(). 어떻게 민첩한 스승과 한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조훈현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도 최고수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상대에게 존중받으려면 상대 역시 존중해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를 이룬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성경에도 유사한 말이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바둑은 실수를 적게 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

 

알파고를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알파고는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계산을 하는 것이고, 컴퓨터는 계산을 실수하지 않으니 이길 수가 없다.

 

모델링도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모델을 설계하든 품질이 유사하게 나오도록 설계하는 모델러가 고수라는 말이다.

 

내가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었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내게는 천재적인 재능은 없지만, 그 대신 끈기가 있다. 끈기, 노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타고난 재능을 가진 상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둔재라고 평하는 저자가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역시 노력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을 강조한다. 끈기와 노력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한 저자는 둔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알까.

 

스스로 교만한 줄 모르는 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적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만의 끝내기다.

 

자만이 곧 패착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가 자만을 경계하는 게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변화하더라도 주변 상황이나 경쟁 상대가 더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되는 원리다.

 

변화는 필연이다. 움직임을 멈추고 정체되는 것은 퇴보다. 어설프게나마 앞으로 움직여야 나아갈 길이 만들어진다. 정체를 벗어나 처음 내가 밟는 그곳이 곧 길이 된다.

 

변화. 오랫동안 생각했던 단어다. 어쨌든 수년 간의 고뇌 때문에 나는 변화를 택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 나는 변하고 있다. 훗날 보면 길을 만들었다며 잘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까?

 

위기십결의 첫째 계명이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문자 그대로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중략) 부득탐승도 좁은 바둑판 위의 허상을 벗어던지고 목표에 집착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넓은 인생의 실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십계명에 버금가는 바둑의 십계명이 위기십결이란다. 그 위기십결 중에서 첫 번째 항목이 저자가 제목으로 사용한 부득탐승이다. 목표에만 집착하면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위기십결에는 버리라는 사자성어가 셋이나 된다. 버림을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끊임없이 비우고 새롭게 채우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채우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어떤 그릇이든 비워져야 채울 수 있다는 이치는 어린아이도 안다. 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 이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외면하려는 욕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욕심을 비워야 평안을 채울 수 있다. 채우기 위해서 비우는 것은 아닐 게다. 욕심을 비워야 한다는 말일 게다.

 

겸손과 자존심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꺽이지 않는 단단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겸손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거 같다. 어떤 상태가 겸손한 건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면 겸손한 건가그건 아닌 것 같다. 알아야 겸손할 수 있을 거 같다. 실력이 있어야 겸손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과 약간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고통은 관조하는 법, 아니 겸허히 고통과 친해지는 법을 안다면 극복 못할 병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두통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머리를 쓰는 일이니 당연하다. 바둑과 비교할 수 없지만 모델링으로 머리를 쓰는 나의 두통 역시 당연한 것일 게다. 받아들여야 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결국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한다. 빠른 후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대충 덮어두고 잊어버리면 나중에 훨씬 큰 타격으로 돌아온다. 순간의 결함만 때우는, ‘눈 가리고 아웅식 미봉책(彌縫策)을 사용하면 언제나 패착으로 귀결된다.

 

미봉책은 시스템 개발에 만연해 있는 현상이다. 잘은 몰라도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토대가 되는 데이터 모델이 많이 이상해도 시스템은 돌아간다. 수많은 미봉책의 결과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점점 많은 미봉책이 필요하고, 점점 힘들어진다.

 

미봉책을 쓰는 이유는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개선(改善)이 힘들다고 피하면 훗날 더 힘들어진다. 단순히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공멸(共滅)할 수도 있다.

 

나에게 바둑은 추억이다. 젊었을 때 지탱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 근심 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우연히 읽은 조훈현의 자서전과 조훈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창호의 자서전까지 한 번에 읽었다. 바둑의 세계는 스토리와 감동이 넘친다. 원래 재미있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재지만, 내가 하는 일인 모델링과 유사한 면이 많아서 재미 외에 얻은 게 있는 책이었다.

 

바둑 고수들의 자서전만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때를 그려본다. 조치훈, 서봉수, 이세돌의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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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기린 2017.04.22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범님 전성기때 기풍이 아마 지금 알파고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가사의 고수의 환생 이런 수식어가 붙었죠

    조치훈명인은 목슴을걸고둔다라는 이야기로 유명한 치열한기사셨는데 지금 모습은 개그맨에 가까우신듯

    바둑해설하시다 골프이야기민 하시는 동영상보고 배를 잡았는데 가장 조아하는 기사 였죠 휠체어대국의 강렬함이란

    • 블루퍼필 2017.04.22 1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휠체어 대국 장면은 충격적이었죠.
      열정만큼은 그때보다 못하지 않을텐데...
      조치훈 등 노장 기사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창호가 한번 더 정상에 올랐으면...
      같이 나이를 먹다 보니 응원하게 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