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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Story/일상

1995년 황당 에피소드

1995. 저에게는 의미있는 해였는데 그때 얘기를 가끔 쓸 생각입니다.

 

그때 찍은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사진을 이미 소개드렸고요. 정말 강추입니다.

 

이번엔 제가 겪었던 황당한 에피소드(또는 닭짓)입니다. 지명 이름은 기억나는대로 적었습니다.

 

95년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장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주변에선 제가 처음이었는데, 그 당시 막 유행하려던 때였던 거 같아요.
연수를 가장한 배낭여행이요. 다들 그랬을 겁니다.

 

케언즈라는 아담한 항구 도시에서 어학연수 끝내고 시드니로 가게 됐는데요. 배냥 여행의 시작이었죠.

 

케언즈와 시드니는 거리가 상당한데요. 시드니에서 케언즈로 버스를 타고 온 모든 경험자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버스를 선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지만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배낭 여행의 스타트고, 이번에 아니면 언제 해보냐고...

 

죽는 줄 알았어요. 한번 고장나서 지체한 시간까지 약 30시간 이상 걸린 거 같습니다. 탈출하고 싶었어요사람을 은근히 미치게 만들더라고요.

객기 부리지 말고 비행기로 깔끔하게 해결했어야 했는데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바로 후회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역시 추억입니다.

 

두 번째 닭짓은 뉴질랜드에서 비행기를 놓친 것입니다. 택시비 아끼려고 버스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우리나라와 너무 달랐어요. 너무 여유로웠어요.

 

그래도 공항에 40~50분 전에 도착했는데 탈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열차 놓친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놓치다니... 남는 게 시간이었는데...

 

좌석이 비는 다음 비행기 기다리는 데 일주일 걸렸습니다. 그덕에 돈은 몇 배나 더 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일주일동안 멍하게 지내던 시간도 좋았던 거 같아요. 헌책방 돌아다니며 엽서 모으고, 비 맞으면서 마냥 돌아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세 번째는 발리에서의 악몽인데요. 자연스럽게 다가온 두 명의 현지인과 친구가 됐어요. 며칠 같이 다니다 음식을 먹고 숙소에서 쓰러졌는데요. 모르는 사이에 제 음식에 약을 탄 거에요.

 

그당시 뉴스에 가끔 나오던 얘기라서 굉장히 주의했는데... 그들의 홈그라운드라 한계가 있었던 거 같아요. 음식점과 공모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게 노력했다면 깨끗이 당해야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권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현금 100달러, TC 1000달러, 비행기 티켓, 워크맨(이승환 테이프 꽂혀 있던) 등 돈 될만한 건 다 가져갔는데, 여권은 그냥 두고 갔어요.

 

돈 되는 줄 누구보다 잘 알텐데 보너스었던 거죠. 여권마저 없었다면 정말 국제 미아가 될 뻔했는데 순간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오래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지만요.

 

그때의 분노는 말할 수 없었어요. 잘해줬는데... 은행에서 TC 찾고, 심신이 안정된 후에 비치에 갔다가 우연히 도망간 한 명을 발견했어요. 추격전 끝에 잡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더라고요. 경찰에 넘기는 것도 부질 없는 거 같고...

 

그때 징하게 고생한 덕에 결과적으로 배낭여행이 3개월로 끝난던 거 같아요.

 

마지막 닭짓은 인도에서 했는데요. 인도 여행 중에 바라나시라는 도시에서 심하게 앓았습니다. 한 이틀 정도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소똥 냄새와 향 냄새가 뇌를 마비시킨 거 같아요.

 

바라나시는 가트(강가에 있는 계단)로 유명한데요. 갠지스 강가에 앉아서 며칠을 보냈는데 체력도 회복이 안 되고 문득 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캘커타에서 방랑하던 한국인을 만났는데 포카라(네팔)에 한 번 가보라던 얘기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냥 네팔 카투만두행 비행기를 탓습니다. 캘커타를 시작으로 6개월 정도 인도를 떠돌다 캘커타에서 태국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계획을 순식간에 바꾼 거에요.

 

그런데 비자 때문에 다시 인도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국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비자가 있고, 나가면 다시 받아야 하는 비자가 있는데요. 저는 당연히 후자를 받았죠. 저렴하니까요. 살아가면서 돈이 항상 문제에요.

 

거기서도 버스를 10시간 정도 타고 국경으로 갔다가 인도 입국을 거절당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시는 장거리 버스 안 타려고 했는데... 이번엔 비포장 도로가 많아서 초죽음이 돼서 내렸습니다. 돈 아끼려다 고생 무지하게 한 거 같아요.

 

캘커타에서 그 한국인만 안 만났어도 고생은 안 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대신 최고의 추억인 안나푸르나행을 선물받은 거 같아요. 나이도 이름도 묻지 않고 짜이 한잔 마시며 얘기한 1시간 정도가 많은 것을 바꿔놓은 거 같습니다.

 

어쨌든 이 닭짓이 치명타가 돼서 더는 여행을 포기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 텔레비전이 너무 그리웠어요.

 

 

ps

 

이력 엔터티 시리즈를 써야 되는데 몇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모델링 교육 요청을 받아서 교육자료 만드는 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고, 본격적인 교육은 처음이라 신경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어요. 예상대로 녹녹치는 않고요. 그렇게 나쁘진 않지만 스트레스가 없진 않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안정이 안 돼 시리즈를 못쓰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이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이력 엔터티 시리즈는 9개나 남았는데 언제 올릴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쓸 예정입니다.